정의선 회장이 강조한 “후대를 위한 준비” 수소전략
수소차에서 생산·충전·물류·산업·발전까지 수소경제 전 영역으로 확장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소 전략이 자동차를 넘어 에너지와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소전기차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완성차 기업의 모습이 중심이었다면, 현재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수소 사업은 수소 생산부터 저장·운송·충전, 수소전기차와 상용차, 물류, 발전, 산업용 에너지까지 연결하는 ‘수소 밸류체인’ 전체를 구축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국내 수소버스 보급 확대를 위한 운수사·충전사업자와의 협력, 제주 그린수소 사업, 아프리카개발은행과의 청정에너지 협력, 글로벌 에너지 전문가 영입 등이 잇따르면서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이 다시 한번 구체적인 사업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사업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HTWO’입니다. 현대차그룹은 2024년 그룹사의 수소 역량을 하나로 결집한 수소 브랜드이자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HTWO를 출범시켰으며, 수소 생산에서 저장·운송·충전, 최종 활용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HTWO가 지향하는 방향 역시 단순한 수소차 제조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Global Energy Transition Leader’입니다.이 같은 전략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약 30년 동안 축적해 온 수소 기술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 수소 관련 연구개발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2004년 독자적인 연료전지 스택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2013년 세계 최초 수소전기차 양산 체제를 갖춘 투싼 ix35 Fuel Cell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2018년 수소전기차 전용 모델 넥쏘를 출시했고, 2020년에는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전기 대형 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을 내놓으며 승용차에서 상용차로 수소 모빌리티 영역을 넓혔습니다. 현재는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와 유니버스, 수소전기트럭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6년 8월 기준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25개국 이상에 수소전기 승용차를 4만9천 대 이상 보급했으며, 수소전기 상용차 역시 북미·유럽·아시아·중국 등 16개 시장에 약 4천 대를 공급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국내 수소전기버스는 3,500대 이상이 보급됐고 수소전기트럭의 글로벌 누적 주행거리도 2,700만km에 달합니다. 이는 수소가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실제 운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사업 분야라는 점을 보여줍니다.특히 현대차그룹이 최근 강조하는 부분은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전기차를 경쟁 관계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9월 제주에서 열린 ‘2026 제주 그린수소 글로벌 포럼’에서 현대차그룹은 FCEV와 BEV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모빌리티 솔루션이라는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배터리전기차가 승용 및 다양한 단거리 이동에서 활용성을 확대하는 동안 수소전기차는 빠른 충전과 긴 주행거리, 높은 가동률이 중요한 장거리·고중량 운송과 버스, 택시, 물류트럭 같은 필수 모빌리티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현대차그룹이 바라보는 수소의 역할은 단순히 자동차의 연료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할수록 전력 생산과 소비의 시간적 불일치, 전력망의 수용능력, 특정 시간대 충전 수요 집중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현대차그룹은 이 과정에서 수소가 에너지를 저장하고 필요한 시점에 활용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주 포럼에서 신승규 현대차그룹 부사장이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결합하면 에너지 시스템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주는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을 실제 지역 에너지 시스템으로 실증하는 대표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주 구좌읍 행원에 구축된 3.3MW급 수전해 단지는 2024년 9월부터 하루 약 200kg의 수소를 생산해 제주 지역 수소버스와 수소승용차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역시 2027년까지 수소승용차 290대, 수소버스 76대, 수소트럭 3대 등 누적 370여 대의 수소 모빌리티를 도입할 계획이며, 현대차그룹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수소 및 V2G 분야 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현대차그룹은 수소 생산 방식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PEM 수전해 기술뿐 아니라 유기성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W2H(Waste-to-Hydrogen) 기술 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7월에는 충청북도 청주에 현대차그룹이 직접 운영하는 국내 첫 자원순환형 수소 생산·충전 복합사업장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설은 하루 약 500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으며 향후 일평균 생산량을 2톤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지역에서 다시 모빌리티 연료로 사용하는 ‘지산지소’ 형태의 수소 생태계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새만금 역시 현대차그룹이 주목하는 대규모 수소 사업 거점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대규모 PEM 수전해 플랜트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소 생산부터 충전소, 항만·물류장비, 수소 모빌리티까지 연결하는 통합형 생태계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HTWO가 공개한 사업계획에는 새만금 200MW 규모 PEM 수전해 플랜트 구축 계획도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소버스 보급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문제인 ‘충전 인프라’에도 현대차가 직접 뛰어들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9월 15일 선진그룹, 하이넷, 한국자동차환경협회, 한국천연가스수소충전협회와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수도권 주요 버스 노선의 수소 모빌리티 전환과 충전 인프라 확대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선진그룹은 수도권과 호남권에서 약 1,700대의 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김포·파주 차고지의 기존 CNG 충전소를 수소충전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오는 2032년까지 수소버스 480대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이 협력에서 현대차의 역할은 수소버스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충전소 부지를 발굴하고 전문 구축사를 연결하는 과정부터 지원하며 수소버스 특화 정비교육까지 제공해 실제 운수사업자가 수소버스를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KD운송그룹과 K1모빌리티 등 대형 운수사와 수소버스 전환 협약을 맺은 데 이어 선진그룹까지 파트너십을 확대하면서 수도권 대중교통의 수소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지난 9월에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아프리카의 산업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하면서 그린수소를 포함한 재생에너지 기반 청정에너지 전환을 협력 분야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켰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에너지·인프라·산업화 역량과 AfDB의 개발금융·투자유치 및 사업개발 역량을 결합해 아프리카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겠다는 것입니다.특히 이번 협력은 수소를 단순히 차량에 공급하는 연료 사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현대차그룹과 AfDB가 설정한 6개 협력 분야 가운데 첫 번째가 그린수소를 포함한 재생에너지 기반 청정에너지 전환이고, 여기에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도로·철도·항만 등 교통·물류 인프라, 핵심광물을 활용한 전기차 밸류체인, 산업화 및 제조 역량 강화, 인재 양성이 함께 포함됐습니다. 수소를 에너지·교통·산업을 연결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략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글로벌 협력의 폭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위원회 공동의장사로서 글로벌 수소 생태계 확대를 위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에어리퀴드와 한국·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밸류체인을 고도화하고 수소 모빌리티와 인프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습니다.최근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에너지 업계에서 수소 사업 경험을 가진 인물을 직접 영입한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지난 8월 31일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bp에서 18년간 에너지 사업 전반을 담당하고 2022년부터 수소 사업 개발 조직을 이끌었던 홍은희 부사장을 HMG에너지&수소사업본부장으로 영입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청정수소 생산부터 수소전기차와 충전 인프라까지 수소 밸류체인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사업 확대 및 사업화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수소의 활용처도 자동차를 넘어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발전·물류·건설장비·항만장비·선박 등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HD한국조선해양 및 부산대와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상용화를 위한 협력을 진행하고 수소전기 트랙터 실증에도 나섰습니다. HTWO가 제시하는 수소 생태계에는 수소버너, 발전, 항만장비, 탄소저감 철강 생산 등 산업용 애플리케이션까지 포함돼 있습니다.결국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수소경제의 핵심은 ‘수소차를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수소가 생산되고 이동하며 저장되고 소비되는 전체 구조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수소로 저장하고, 생산된 수소를 운송해 충전소에서 차량에 공급하고, 수소전기차와 트럭·버스·선박·철도·산업장비에서 사용하며, 필요에 따라 발전과 산업용 에너지로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HTWO가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운송·충전, 모빌리티와 산업 활용까지를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묶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수소 전략의 중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일관된 장기적 관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측은 최근 수소경제 관련 토론회에서 정의선 회장의 수소 사업 방향에 대해 “저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라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습니다. 정의선 회장 역시 2024년 CES에서 현대차그룹이 수소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수소는 저희 세대가 아닌 후대를 위해서 준비해 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이 발언은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을 바라보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수소 사업은 단기간에 전기차처럼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기 어려운 분야이고 생산단가, 저장·운송, 충전 인프라, 수요 확보, 정책 지원이라는 복잡한 조건이 동시에 맞물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국내 수소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신승규 부사장은 수소 기술은 10년, 20년에 걸쳐 축적해야 하는 만큼 기업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장기적인 정책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수소에 투자하는 방식은 그래서 다른 친환경 사업과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당장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단기 사업이라기보다 수소라는 에너지원이 향후 산업과 모빌리티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비해 기술과 공급망, 인프라, 파트너십을 동시에 쌓아가는 장기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약 30년 동안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축적했고, 이제는 그 기술을 자동차라는 하나의 제품에서 에너지 시스템 전체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동차에서 시작해 에너지로 확장하는 수소 생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제주와 청주, 새만금 등 지역 기반의 수소 생산·활용 모델을 만들고 수도권에서는 수소버스와 충전 인프라를 연결하며, 해외에서는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과 아프리카까지 수소 사업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기업과 금융기관, 정부와 지자체, 운수사, 충전사업자, 연구기관까지 다양한 파트너를 연결하면서 수소경제의 규모를 키우려는 모습입니다. 수소경제가 언제 완전히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수소 생산 비용과 청정수소 공급량, 충전 인프라 구축 속도, 정책 지원, 시장 수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행보만 놓고 보면 방향은 분명합니다. 수소전기차를 하나의 제품으로 판매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송하고, 충전하고, 자동차와 산업에서 다시 에너지로 사용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의선 회장이 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가 이제 수소차 한 대가 아니라 글로벌 수소산업 전체를 향하고 있는 셈입니다.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